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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지은 <대화편>중 '티마이오스와 크리티아스'에 나오는 이야기의 줄거리가 아틀란티스에 관한 유일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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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는 일종의 낙원으로, 리비아와 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섬으로, 아름답고 신비한 과일이 나며, 땅 속에는 온갖 귀금속이 풍부하게 묻혀 있고, 도시의 심장부에는 금을 입힌 철탑을 제외하고는 모든 건물이 은으로 덮여 있는 매우 부강한 나라였다.
그런 아틀란티스 사람들은 점점 탐욕 수러워지고 부패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신이 노여워하여 재앙을 내렸는데, 그재앙으로 대지진과 홍수가 일어나 하룻낮 하룻밤 만에 아틀란티스 섬은 영원히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그 모든일이, 9000년 전에 일어났다고 플라톤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약 100여 년까지만 해도 신화적인 존재로 간주되어 왔던 아틀란티스의 존재 여부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트로이와 미케네의 에게 문명이 발굴되면서 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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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들어와서 크레타 섬이 아틀란티스의 일부라는 주장이 나왔다.

무대는 크레타 섬과 산토리니 섬이었는데,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에번스는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에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궁전을 발굴하였다.
크레타 섬은 매우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고, 기원전 1500년경에 갑자기 폐허가 되었는데, 그 원인이 지진이라고 에번스는 주장했지만 증거는 없다.

그 후, 1939년에 그리스의 고고학자 마리나토스는 산토리니 섬에서 화산 폭발과 함께 일어난 해일이 크레타 섬을 덮쳐, 크레타 섬의 중심지는 폐허로 변했다는 학설을 발표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화산은 기원전 1600~1500년에 폭발하였는데 그때, 함께 일어난 해일이 엄청났기 때문에 훨씬 남쪽에 위치한 이집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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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967년부터 마리나토스는 산토리니(테라) 섬을 발굴하여 30~40m 두께의 화산재 아래에서 매우 번성했던 고대 문명의 도시가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산토리니의 재난이 있기 전에 크레타는 매우 번영하였던 섬나라로 지중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짐작할 때, 다음과 같은 추측을 할 수 있다.
 산토리니 화산이 폭발한 때는 기원전 1600~1500년 전후가 되는데 그 당시 이집트에는 고대 문명이 발달했을 때이므로, 크레타와 이집트는 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산토리니 화산이 터져, 그영향은 이집트까지 미쳤고, 그 후에 크레타 사람들의 왕래가 끊어지자, 산토리니 섬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이집트 인들 사이에 전해 오다가 솔론이 알게되어 플라톤까지 이어지고, 플라톤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위해 책으로 남긴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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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산토리니 섬의 멸망과정과 발굴된 후의 모습은 플라톤이 묘사한 내용과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에도 문제점이 많다.
먼저 플라톤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 9000년 전이라고 했는데, 산토리니 화산 폭발은 1600~1500년에 있었다는 점이다. 또 플라톤은 아틀란티스가 대서양에 있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위치가 너무 틀린 것이 아닐까?

이러한 주장에 대해 새로운 반론이 나왔다.
당시 이집트 인들은 해양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아틀란티스의 위치를 잘못 알았으며, 플라톤이 말한 9000년 전이라는 것은 실제로 900년을 잘못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면, 플라톤이 말한 아틀란티스는 산토리니 섬과  크레타 섬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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